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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다시쓰는 폐광지역 리포트] 3. 광부 목숨 위협했던 매몰사고
2023.03.31

탄광에서 가장 위험한 사고는 매몰사고다. 탄광 특성 상 좁고 폐쇄적인 환경은 사고 발생 시 구조를 어렵게 만들었고 다른 광물보다 무른 석탄의 특성은 매몰된 사람에게 버틸 수 있는 긴 시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대한석탄공사에서 지난 1951년부터 2000년까지 대한석탄공사가 운영하고 있는 탄광 내 안전사고의 원인별 재해인원을 집계한 결과 전체 재해인원 6만4283명 중 1만8076명이 갱내에서 천장이나 벽의 암석이 떨어지거나 무너져서 발생하는 사고인 낙반붕락 사고를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체 재해인원의 약 28.1%에 달하는 수치다. 도내에서는 1967년 12월 태백 장성광업소에서 9명이 낙반사고로 인해 사망했고, 1973년에는 영월 옥동광업소에서 5명이, 1976년 경동탄광에서 4명, 1983년 태백 풍전탄광에서 4명, 1985년 정선 삼척탄좌에서 3명이 붕락사고로 목숨을 잃는 등 탄광에서는 매몰사고가 속출했다.


1970년대부터 정선, 삼척 등지 탄광에서 근무했던 최월선(73)씨는 당시 탄광 관리업무를 맡아 진행하며 사고를 직접 목격하는 경우가 많았다. 원청의 경우 안전관리가 그나마 나았지만 하청 탄광의 경우에는 잠시 방심하는 사이 사고가 쉽게 발생했다. 특히 다른 광물에 비해 단단하지 않고 무른 석탄의 특성상 매몰사고가 쉽게 발생했다고 최 씨는 설명했다. 최월선씨는 “석탄이라는 게 곡괭이나 쇠봉 가지고 찍어도 상처가 날 만큼 매우 무른 광물인데 이걸 계속 캐고 파고 하다보면 지반에 무리가 갈 수밖에 없다”며 “그러다가 쉽게 무너지면 사람이 그 안에 파묻히는데 다른 광물들은 단단하다보니 공간이 생겨 생존하는 경우도 많지만 석탄은 그대로 묻혀 숨을 못 쉬어 사망하는 일이 많았다”고 말했다.


1978년부터 2004년까지 정선 동원탄좌에서 근무하며 6~7년간 구조대 생활을 했던 윤병천(77)씨도 당시 매몰사고 현장을 생각하면 아픈 기억이 먼저 떠오른다고 했다. 윤병천씨는 “아침까지는 멀쩡히 걸어 들어갔던 동료가 사고를 당해 시신만 수습해야 하는 상황을 계속 겪다보면 회의감이 심하다”고 토로했다. 당시 구조대는 굴진, 채탄 등 자기가 맡은 직종을 하다가 사고가 발생하면 구조 작업에 투입되는 인력이었다. 약 10명으로 구성됐으며 사고규모에 따라 인원은 변동됐다. 윤병천씨의 경우 갱도 내 지지대를 보수하는 업무를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갱도를 잘 안다는 이유로 구조대로 선발됐다.


1985년 퇴사하기 전까지 약 13년간 정선 나전광업소에서 근무하며 직접 매몰사고를 겪었던 이광재(71)씨는 결국 매몰사고로 인해 탄광을 그만둬야 했다. 매몰사고 당일 이광재씨는 을번 근무자로 오후 4시에 들어가 밤 12시까지 근무하는 근무조에 편성돼 있었다. 그날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근무에 투입돼 일을 하고 있었는데 당시 갱도 구조가 여러 갱도에서 캔 석탄을 통로를 통해서 한 곳으로 모으는데 많은 석탄이 한 번에 통로로 쏟아지다 보니 통로가 막히는 경우가 빈번히 발생했다. 쌓여 있던 석탄이 한 번에 쏟아졌고 쏟아진 석탄은 그대로 이광재씨를 덮쳤다.


당시를 회상하며 이 씨는 “평소와 같이 통로를 뚫고 있는데 갑자기 탄이 쏟아졌다. 엄청난 양이 한 번에 쏟아지는 걸 보고 있으니 나는 죽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곧바로 정신을 잃었는데 정신을 차렸을 때는 병원에 실려온 뒤였다”고 말했다. 이 씨는 다행히 근처에 있던 동료들에 의해 신속히 구조됐고 바로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약 3년간 병원 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로 부상 상태가 심각했다. 결국 이광재씨는 해당 사고로 인해 광업소를 퇴사해야 했다. 이 씨는 “그래도 살아서 다행”이라며 “사고로 죽는 동료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아픈 것보다 살아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고 말했다.


출처 : 강원도민일보(http://www.kado.net)http://www.kado.net/news/articleView.html?idxno=1166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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