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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다시쓰는 폐광지역 리포트] 10. 고향 떠나 안산으로 갈 수밖에 없었던 광부들
2023.03.31

1989년부터 시행된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으로 인해 태백, 정선, 영월, 삼척에서 일하던 광부들은 일자리와 살 곳을 잃었다. 대부분 먹고 살기 힘들어서 탄광에 들어갔고 사택에서 모여 살았기 때문에 폐광 이후 당장 살 곳마저 없어져 버렸다. 먹고 살려고 탄광에 들어온 광부들은 또 다시 먹고 살기 위해서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강원도 탄광촌을 떠났던 광부들이 많이 이주한 곳은 경기도 안산이다. 안산의 경우 반월국가산업단지와 시화국가산업단지 등 공단이 위치해 있어 일자리가 많았다. 폐광 이후 일자리를 찾고 있던 광부들에게는 최선의 선택지였다.


탄광지역 광부들의 안산 이주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들은 서로 의지하고 정보를 교환하면서 안산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광부와 그 가족들이 안산으로 대거 이동하면서 곧바로 재안산강원도민회라는 단체가 생겨났다.


재안산강원도민회가 추정하는 안산 거주 강원도민은 약 17만명으로 알려져있다. 안산 전체 인구 63만 명의 약 26%에 달하는 수치다. 현재 강원도민회 활동을 하는 회원은 약 3000명 정도다. 이같은 인연을 반영해 태백시는 지난해 경기 안산문화예술의전당 화랑전시관 제2전시실에서 ‘탄광유산에 꽃을 피우다’라는 주제로 ‘검은황금 사진전시회’를 열었다.


재안산강원도민회에서 고문 역할을 맡고 있는 고학윤(68)씨도 정선에서 태어나 대성탄좌 등 여러 광산 하청업체에서 일했던 광부다. 고학윤씨는 지난 1989년 안산에 정착했다. 아버지도 광부였고 평생 살아온 고향 정선을 떠났던 이유는 바로 먹고 살기 위해서였다. 고학윤씨는 당시를 회상하며 “그때 한참 폐광이 되면서 거기서 일하던 광부들이 일자리를 찾아 안산에 많이 왔다”며 “그나마도 석탄산업 합리화 때는 젊은 나이들도 아니었기 때문에 소위 말하는 막노동을 하거나 경비 일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안산으로 이주한 고학윤씨는 우연한 계기로 재안산강원도민회를 알게 됐고 정선 사람들을 모아 정선군민회를 만들어 고향의 향수를 달랬다. 고학윤씨는 “처음에 정선군민회 회원이 약 200명 정도 됐는데 대부분이 석탄산업 합리화로 인해 일자리를 잃고 온 광부거나 그 가족이었다”고 말했다. 태백에서 태어나 한보탄광에서 일했던 강영만(65)씨도 1996년 안산으로 이주했다. 당시 자녀들은 계속 커 가는데 석탄산업 합리화로 인해 태백에는 일자리도 없고 학교도 마땅치 않아 안산으로 이주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안산 정착 후 그는 탄광 기술을 살려 지하철 7호선, 8호선 공사장에서 일했다.


강영만씨는 당시를 회상하며 “탄광에서 일했던 동료들 여럿이 나와 같이 지하철 공사장에서 일했다”며 “예전에 태백에서는 사택에서 살면서 매일 보던 동료들이었는데 도시로 나오니까 일터 아니면 보기도 어려워 많이 아쉬웠다”고 말했다.


그는 고향인 태백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물닭갈비가 생각난다고 했다. 강씨는 “원래 물닭갈비는 광부들이 싼 값에 술안주로 먹던 음식이었는데 이제는 태백 대표 음식이 됐다”며 “물닭갈비를 보면 당시가 떠오르면서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 더욱 아쉬워진다”고 말했다.


출처 : 강원도민일보(http://www.kado.net/news/articleView.html?idxno=1175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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